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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목,건축

철도란 무엇인가? 철도 때문에 망한,흥한 도시

by ZOZOON 2020. 8. 19.

철도란? 

침목 위에 궤도를 부설하고 그 위로 차량을 운전해 사람이나 물자를 나르는 시설의 총칭.

한국법에서 "철도"라 함은 여객 또는 화물을 운송하는 데 필요한 철도시설과 철도차량 및 이와 관련된 운영ㆍ지원체계가 유기적으로 구성된 운송체계를 말한다(철도산업발전기본법 제3조 제1호).

 

철도의 역사

 

운송수단을 위한 전용길로 마찰력을 줄여서 속도를 높이고 적은 힘을 들인다는 생각은 기원전부터 있었다. 레일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600년경의 그리스 코린트 해협의 마찻길로, 현대에는 운하를 놓을 정도로 좁고 해상운송이 많았던 코린트 해협은 짐을 해협에서 반대편 해협으로 넘겨주는 일이 잦았는데 이때 수레를 빠르고 가볍게 끌고자 길에 수레 전용 홈을 팠고 상당히 유용했는지 이 수레 전용 길은 그리스 시대는 물론 1000년 뒤인 동로마제국 때까지 유용하게 사용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중국의 전국시대에도 수레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길마다 수레 전용홈을 팠고 수래축도 이 홈 길이에 맞춰서 규격화 했다. 이때 전쟁을 대비해서 다른 나라 수레가 못 들어오게 하기 위해 나라마다 수렛길의 간격을 다르게 팠는데 때문에 훗날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나라마다 달랐던 수렛길 간격과 수레축을 통일하는 작업을 벌였다.

이후 운송수단 전용길을 만든다는 발상은 오래동안 묻혀졌고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널리 보급되지 못했는데 다시 본격적으로 활용된 것은 1556년으로 독일의 의사 겸 광물학자인 게오르기우스 아그리콜라는 자신이 생각하고 그린 발명품의 설계도를 모은 De Re Metallica에서 나무로 만든 2개의 길과 그 간격에 거기에 딱맞는 수레를 얹어서 광물을 효율적으로 나르는 방법에 대해서 썼는데 재질만 다르지 오늘날 철길의 원리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설계였다. 이 발명은 독일의 광산을 시작으로 50년 뒤에는 영국 웨일즈의 석탄광산까지 쓰일 정도로 빠르게 보급되어서 오늘날에도 그 재료만 달라졌지 그 기본원리는 그대로 따르고 있다.

하지만 나무의 재질상 잘 부러지고 습기에도 약하다는 단점이 있었기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1760년에는 Coalbrookdale사에서는 나무길에 주석을 바르는 방법을 시도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이것을 극복한 것은 철의 대량생산이 이루어지면서 가능했는데, 모든 레일을 철로 바꾸면서 주행손실은 최소화하고 속도는 말의 최고속도까지 올릴 수 있었다.

여기에서 왜 바퀴와 트랙을 쇠로 바꾸는 게 속도와 관련이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흔히들 마찰력이 줄어서라고 이해하는데, 사실 강체 표면에서 굴러가는 강체 바퀴는 강체 표면과의 마찰력을 받지 않는다. 사실 이건 일반물리학 과정을 초월하는 내용이라 복잡하긴 한데, 그래도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강철이 탄성이 굉장히 좋은 물질이기 때문이다. 보다 엄밀하게는 강철은 탄성 변형을 하는 구간이 길다고 표현한다. 미끄러지지 않고 완벽하게 굴러가는 물체는 이론적으로는 무한히 굴러가야 하나, 실제로는 바퀴 그 자체와 바닥이 강체가 아니기 때문에 굴러가는 과정에서 접촉면의 바닥을 눌러 압축시키고 바퀴 자체도 접촉면 부분이 압축되기 때문에 운동에너지의 일부가 접촉(일종의 충돌이다)을 통해 바퀴와 바닥의 포텐셜 에너지로 전환되고, 다시 바퀴가 굴러가며 접촉했던 부분이 떨어질 때 다시 원래대로 복귀하며 포텐셜 에너지를 다시 원래대로 회전 운동에너지로 전환시키는데, 이 과정에서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해 결과적으로 그 일부를 내부 에너지, 즉 열에너지로 잃게 된다. 철은 흙바닥이나 아스팔트, 고무 바퀴 혹은 나무바퀴보다 탄성변형 구간이 더 길어서 소성변형하며 손실되는 운동에너지가 더 적은 것이다. 좀 더 직관적인 예시로는, 쇠구슬 두 개를 부딪히면 운동에너지가 대부분 보존되지만, 같은 질량의 폭신폭신한 쿠션 두 개를 충돌시키면 운동에너지가 굉장히 많이 없어지는 것을 상기하면 된다. 이 경우, 쿠션들의 운동에너지는 대부분 쿠션의 내부 에너지, 즉 대부분 열에너지로 전환된 것이다. 이렇게 내부 에너지로 손실되는 운동에너지 때문에 구르는 물체가 멈추게 되는 현상을 구름 저항이라 한다. 소성변형을 잘 하지 않는 강철은 구름 저항이 적은 것. 물론 현실에서는 바퀴 축과 베어링 등에서 발생하는 마찰력도 있지만, 이 팩터는 고무바퀴를 쓰는 자동차에서도 비슷하므로 생략.

이후 영국의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개량하고, 이를 토대로 리처드 트레비딕이 1804년 세계 최초의 증기 기관차인 펜-이-다렌(Pen-y-darren)호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당시 레일은 주철을 사용했기 때문에 증기 기관차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깨지기 일쑤였다. 리처드 트레비딕은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여 증기 기관차의 상용화는 실패했다.

그 후 1825년, 조지 스티븐슨이 연철 레일을 개발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조지 스티븐슨은 이 연철 레일과 자신이 개발한 증기 기관차 로코모션 1호를 이용하여 영국 스톡턴과 달링턴 사이에 화물철도를 부설, 세계 최초로 증기 기관차의 상용화에 성공하였다. 나아가 조지 스티븐슨은 1830년 리버풀과 맨체스터를 잇는 철도를 부설, 성능을 크게 높인 로켓호도 선보이면서 여객 운송까지 시작, 근대적인 철도 교통 시스템의 시발점을 만들었다.

이후 레일은 제강기술이 발전하면서 강철로 바뀌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철도 때문에 망한 도시?

 

충청남도 공주시 : 공주는 본래 조선시대에 충청감영과 관찰사가 주재하던 곳으로 충청도의 중심지였으나, 대전에 경부선이 지나고 호남선이 분기하게 되면서 대전이 충청도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올랐고 공주는 지금도 계속하여 쇠락하는 중이다. 이와 관련하여 본래 경부선&호남선은 공주를 지나갈 예정이었으나 공주 유생들의 강력한 반대로 인해 공주 대신 대전에 철도를 설치하였고 그것이 대전과 공주의 운명을 뒤바꿔버렸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사실 이건 근거 없는 이야기이다. 당시에 전쟁으로 인하여 경부선과 호남선의 공주시 경유를 생각할 겨를 조차 없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로. 애초에 공주시의 지리적인 입지를 생각한다면 성장하기가 쉽지 않은 도시이다. 그리고 지금은 KTX 전용역이 들어서게 되었지만.... 또한 현재 계획되고 있는 이 노선도 언제 지어질지 모른다.

 

철도 때문에 흥한 도시?

 

대전광역시 : 이름(大田=큰 밭)에서 볼 수 있듯이 과거 조선시대에는 논밭밖에 없었던 시골이였으나, 일제강점기에 경부선&호남선이 놓이게 되면서 엄청난 발전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5번째로 발달된 대도시가 되었다.
대구광역시 : 원래 경상감영이었다가 철도가 놓여 더욱 발전하게 된 대전보다 더욱 발전하였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4번째로 발달한 대도시다.
경상남도 밀양시
경상북도 영주시
충청북도 청주시 : 충청북도에서 1번째로 발달된 도시이다.[13] 물론 안 좋은 의미로 철도로 크게 발전했다. 자세한 것은 오송역 문서로.
충청남도 천안시 : 충청남도에서 1번째로 발달된 도시이다.[14] 단, KTX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천안아산역을 이용해야 한다.
전라북도 익산시 : 전라북도에서 2번째로 발달된 도시이다.[15]
전라남도 순천시 : 전라남도에서 1번째로 발달된 도시이다.[16]
서울특별시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 엄밀히 말하자면 지상철은 아니고 지하철이지만, 역시나 철도 덕분에 엄청나게 발전하게 된 케이스다. 대전처럼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는 달랑 초가집에 논밭밖에 없었던 시골 깡촌인 강남 일대가 문민정부 시대에 이르러 강북 일대의 개발제한정책으로 인해서 대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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