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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목,건축

다리(bridge)란 무엇인가? 다리 붕괴사고

by ZOZOON 2020. 8. 19.
              

 

                                                           

1.다리란?

어떠한 것을 넘어가기 위한 고가 구조물.

여기서 어떠한 것에는 냇가, 골짜기, 계곡, 강, 바다와 같은 자연지형부터 도로, 철로, 건물 등 위로 건너갈 수 있을 법한 것들이 거의 들어간다.

교량을 시공할 때는, 해당 구역을 매우는 것보다 교각을 세워 건너가는 것이 더 경제성이 있을 때 시공을 결정하게 된다. 여기서 경제성이란 단순히 직접 현금으로 환산되는 가치 뿐 아니라 생태계 보존과 심미성 등의 가치도 포함된다.

다리를 구성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물론 다리의 종류에 따라 이 밖의 다른 구조물들이 추가될 수 있다.
상판 (Deck) : 실제로 다리 위를 지나갈 대상을 직접 지지하는 부분.
교각 (PIer) : 상판의 무게를 땅으로 전달하는 부분 중 다리의 중간에 설치되는 것을 칭한다.
교대 (Abutment) : 상판의 무게를 땅으로 전달하는 부분 중 다리의 양 끝에 설치되는 것을 칭한다. 아치교의 경우 다리의 끝이 아니라도 아치의 양 끝에서 무게를 지탱하는 기반 또한 교대라고 부르는데, 이 경우는 해당 교대 위에서 아치교 구간이 끝나고 앞뒤로 접속하는 다른 형식의 다리가 이어서 시작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아치의 경우 그 끝이 어디인지가 명확하기 때문에 가능한 해석.

다리에 적용되는 추가적인 개념은 다음과 같다.
경간 (Span) : 인접한 두 교각/교대 사이의 공간.
경간장 (Span Width) : 인접한 두 교각/교대 사이의 거리.
최대경간장 (Longest Span (Width)) : 한 다리를 구성하는 여러 경간 중 최대의 경간장을 가진 경간의 경간장. 일반적으로 다리의 규모를 가늠하는 척도로 많이 사용된다. 주경간장이라고도 한다. 또 현수교/사장교의 경우 주탑 사이의 경간이 최대경간장이 되는 경우가 잦아, 최대경간장 대신 주탑 간 거리라고도 부른다. 엄밀히 말하자면 '장'을 떼고 '주경간 1,545m' 등으로 표현하는 것은 틀렸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영어 한국어를 가리지 않고 그냥 주경간/최대경간으로 말하는 경우가 잦다. 아니, 영어 위키피디아의 경우 'Length'를 모두 떼고 'Main Span' / 'Longest Span'으로 표현을 통일한 상태이다. 어차피 어떻게 말해도 알아들을 거, 쓸데없는 내용을 줄이자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2. 다리의 종류

2-1. 슬래브교

특별한 구조물 없이 슬래브(바닥판)와 교각, 교대로만 구성된 교량. 가장 기초적인 형태의 교량이다. 시골길이나 동네에 흐르는 조그마한 하천을 통과하기 위해 주로 지어진다. 의외로 주변에 많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양식이 뭔지 모르겠는 작은 다리라면 거의 99% 슬래브교이다. 작은 다리라고 해서 전부 작진 않고, 너비가 커져서 10차로 이상으로 만들 수도 있다.

이 형식의 교량은 특별한 공학적 구조 없이 슬래브 자체의 하중이 교각이나 다리 양 끝단을 눌러서 안정적으로 고정하는 방식이다. 한마디로 돌다리다 이 때문에 산간지역의 콘크리트 슬래브 교량들이 폭우가 와서 줄줄이 쓸려내려가는 것을 뉴스에서 가끔 볼 수 있다. 불어난 계곡물이 다리 위까지 차오르면 순간적으로 슬래브를 띄워버리는데, 유속은 빠르기 때문에 물살에 의한 횡력이 가해져 무너져버리는 것.

 

2-2. 거더교

흔히 아무런 구조물이 없는, 그냥 다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릿발(교각)을 촘촘히 세우고 거기다가 대들보(Girder)를 놓고 그 위에 상판을 올려놓는 방법이다. 다리 밑으로 가서 보면 상판과 다릿발 사이 구조물이 바로 그것. 싸고 쉽게 만들 수 있으나 모양새가 밋밋하기에 멋이 없다. 또한, 다릿발 간격이 좁고 교량의 높이가 낮은 편이라 선박운행에 제한이 따르기 쉽다. 수심이 깊고 유속이 빠른 곳과 같이 다릿발 만들기 까다로운 지역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교량으로는 부산의 남항대교, 잠실대교를 비롯한 한강의 대부분의 교량들을 들 수 있다. 공학적으로는 가장 안정적인 모양새라 유지보수 비용도 가장 적다. 즉 다리 아래쪽 공간에 뭔가 큰 게 지나가야 하는 경우나 랜드마크를 만들어야 하는 경우 또는 다릿발을 세우는 비용이 지나치게 높은 경우가 아니라면 무조건 거더교.

거더 단면 모양에 따라 주로 박스거더와 I-Beam거더로 나뉘며, 사용 기술 또는 재료에 따라 PSC거더, 철근 콘크리트거더, 강거더로 나뉘고, 합쳐서 강박스거더, PSC 박스거더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다만 박스거더의 경우 철근 콘크리트를 이용한 경우는 극히 드믈며, 강재를 I-Beam에 적용하는 경우도 드물다.

시골 기찻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붉은색 철도교가 바로 이 형교다.#소래철교(위키피디아 링크) 붉은색의 철제 거더 위에 철로만 깔아놓은 심플한 형태로, 현재는 각 노선들이 직선/복선/고속화 개량이 되며 PC거더 장대교량에 밀려 점차 사라지고 있으나 여전히 전국에 많이 남아있다.

 

2-3. 트러스교

주로 철재 막대기를 삼각형으로 엮어 구조물을 만든 것을 트러스(Truss)라고 하는데 교량에 트러스를 이용해 다리의 하중을 견디게끔 만든 것이다. 한강철교를 떠올리면 된다. 트러스를 크게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교각 수는 거더교와 아래 서술하는 교량의 중간 정도. 비틀림 등의 이유로 상판의 폭을 넓게 벌리기 어렵기 때문에 도로용 교량보다는 철도 교량으로 많이 만들어진다. 한강철교, 동호대교, 성수대교, 마곡대교, 성산대교가 트러스교다.

이외에도 재건축 전의 성수대교와 당산철교도 트러스교였다. 이렇게 보면 트러스교가 별로 튼튼한 것 같아보이지 않지만 잘 관리된 트러스교는 100년도 넘게 쓴다. 부실시공과 부실관리의 문제였을 뿐이다. 애초에 한강철교가 이제 100년이 다 되어간다.

트러스교 중 주탑간 길이가 가장 긴 교량은 일본의 이키츠키 다리로 주탑 간 길이가 400m에 이른다.

철교를 트러스교로 건설하면 열차가 지나갈 때 쇠 긁는 소리가 아주 진품명품급으로 시끄럽게 난다. 철과 철이 철 위에서 만나서 서로 긁어대는 소리가 아주 명품.과장좀 보태서 손톱으로 칠판 긁는 소리를 100dB 증폭하면 철교 소음이 난다. 경부선 안양철교를 2016년에 재건축한 이유가 바로 이 트러스교의 소음 때문이다.

소음 문제에도 불구하고 철교는 대부분 트러스교를 채택하는데, 트러스교는 콘크리트 교량에 비해 설계축중이 매우 커지기 때문이다. 자동차보다 기차가 더 무거운 것이 사실이고, 열차 1대 당 수백~수천명의 사람을 싣거나, 전차(탱크) 등 온갖 무거운 화물들을 실어서 넘기는 데에 트러스교를 사용한다.

 

2-4. 아치교

현대의 아치교는 주로 철제로 만든 아치(arch) 구조물로 하여금 하중을 견디게 만든 교량이다. 때문에 트러스교와 일정정도 혼재된 형태이기도 하며 쉽게 말하자면 크고 둥근 구조물에 얹힌 다리. 유명한 시드니 하버브릿지가 바로 아치교다. 한강대교, 동작대교, 부산대교, 신호대교를 예로 들 수 있다. 미적으로 아름다운 모양새가 나오지만 하버브릿지 같이 상판 아래로 아치가 내려온다면 수로의 가장자리를 지나는 선박이 아치에 충돌할 위험이 있고 교량의 길이에 제한이 가해지는 단점이 있다. 억지로 크게 만들면 사장교보다도 긴 경간 거리를 달성할 수는 있지만 제대로 돈지랄이 된다. 부분적으로 아치교 형식을 띄는 곳도 있는데, 방화대교, 서강대교가 대표적이며 양화대교도 한강르네상스 사업에 따른 개조로 부분적으로 아치교가 되었다.

다만 아치구조의 경우 구조역학적으로 봤을 때 힘의 작용각도만 잘 맞춰줄 경우 부재에 거의 축력만 작용하도록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즉 힘의 집중이 잘 된다.

 

2-5. 라멘교

아주 쉽게 설명하자면 통짜 교량이다. 다릿발과 상판을 따로 만들어 조립하는 게 아니라 일체로 만드는 것. 제일 쉽게 찾아 볼 수 있는게 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다. 태백선 조동철교처럼 크게 지을 수도 있다. 블로그 참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모양이 너무 투박해 멋이 없는 편이고 교량 유지보수 측면에서도 그다지 이점이 없어 큰 다리를 만들어야 할 때는 별로 잘 이용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지진에 취약하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통짜로 만들다보니 교각과 교량 상판구조가 그대로 연결되는데, 이러한 연결부에서는 수평력과 수직력의 전환이 쉽지 않는 등의 이유로 응력집중 현상이 발생하기 쉽다. 이러한 구조적 취약점에 주기하중이 극적으로 가해지는 지진이 오게되면 그대로 깨져버린다.

 

2-6. 엑스트라도즈교

굳이 말하면 짧은 사장교.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를 결합한 것. 줄여서 ED교라고도 한다.

전체적 외관은 사장교와 비슷하지만 주탑이 낮고 경간이 짧은 교량에 적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주로 케이블에 의해 지지되는 사장교에 비해 비교적 보강거더가 받는 힘이 큰 편. 사실상 보강거더라는 용어가 거더에게 실례될 정도다. 주로 70%는 거더, 30%는 케이블에 지지된다.

케이블이 차지하는 비중이 비교적 적다보니 케이블을 시공한 뒤 통째로 콘크리트 판으로 덮어버리는 ED교가 있는데 이를 사판식이라고 한다. ED교의 시초인 스위스의 Ganter교가 그 예시이다. 국내 첫 ED교인 양근대교 또한 이 형식을 적용했다.

이와 달리 케이블을 노출시키는 형식을 사장외케이블 방식이라고 한다. 국내에선 여수 평여2교가 최초로 적용되었다. 현재 많은 ED교는 모두 이 방식으로 건설되고 있다. 동해고속도로 범서대교, 2번 국도 무영대교, 43번 국도 평택대교, 여수 안도대교 등이 있다.

경간은 PSC 거더교와 사장교 사이 정도가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그 위치가 굉장히 애매하다. 또한 미관상으로도 사장교에 비해 주탑이 짜리몽땅하고 케이블 수도 적어서 역시 애매하다.

다만 사장교에 비해 규모가 작아 현장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서 경제성이 좋고, 심미적으로는 거더교에 비해 뛰어난 편이다 보니 선택되는 경우가 있다. 또는 갑자기 수심이 깊어지는 구간이 있는데 교각을 놓기 애매하다보니 엑스트라도즈교로 설계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3. 성수대교 붕괴 사고

 

1994년 10월 21일 금요일, 00시 20분 무렵과 02시 30분 무렵 1.3 x 2 m 크기 철판이 성수대교 상판 이음새에 깔려 있음을 당시 운행하던 운전자들이 목격하였다. 상판 이음새 부분에 심하게 벌어진 틈새를 덮으려는 서울시의 땜질식 응급 조치였다. 하지만 균열은 시간이 갈수록 커졌다. 사고 당일 새벽 6시 무렵 성수대교를 통과하던 차량의 운전자는 이음매를 지날 때 충격이 너무 커서 서울시에 직접 신고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일하게도 교량진입 통제 등 긴급조치를 취하지 않아 결국 비극적인 대형참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38분 성수대교의 제10·11번 교각 사이 상부 트러스 48 m가 붕괴되었다. 사고 부분을 달리던 기아 베스타 승합차 1대와 기아 세피아, 기아 프라이드 승용차 각 1대는 현수 트러스와 함께 한강으로 추락했고, 붕괴되는 지점에 걸쳐 있던 대우 르망, 현대 엑셀 승용차 각 1대가 물 속으로 빠졌으며, 운전자를 포함한 동승자 3명은 모두 사망했다.

이후에 서울대공원에서 번동 방향으로 가고 있던 한성운수 소속 16번 시내버스는 버스 기사 유모 씨가 붕괴 지점을 발견하고 최대한 급브레이크를 밟았는데도 전륜은 교량 밑으로 내려가고 후륜이 붕괴 부분에 걸쳐 있다가 무게 중심을 잃고 차체가 뒤집어지면서 추락했다. 그 추락 과정에서 사고 버스 창문에 달려 있던 창틀과 창살은 버스 지붕 쪽이 상판 쪽으로 뒤집힐 때 큰 충격을 받아 교량 밖으로 날아갔다. 이 때문에 졸지에 몸이 뒤집혀진 승객들은 일제히 비명과 함께 버스 천장에 머리 등을 크게 박으며 두개골이 깨졌고, 심지어 일부는 차체에 사정 없이 부딪히면서 팔과 다리가 처참하게 찢겨 나갔다. 그래서 그 이후 참혹하게 목숨을 잃은 승객의 시신과 피범벅이 된 유품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당시 기사 물론 16번 버스를 운전하던 당시 사고 버스 기사도 앉은 채로 목숨을 잃었다. 그 사고 버스의 바로 뒤 차의 운전기사였던 동료 최모 씨는 사고 당일 버스 안에서 동료의 죽음을 듣고 펑펑 울었고, 2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한다고 한다.관련 게시글

결국 버스 1대, 승합차 1대, 승용차 4대 등 모두 차량 6대 탑승자 49명이 추락했고 이 중 32명이 사망했다. 사상자 대부분이 바로 거꾸로 뒤집혀서 추락한 16번 시내버스에서 발생하였다. 승객 30명과 버스 기사 1명 중 사망자는 무려 29명, 생존자는 단 2명뿐이었다. 만약 거꾸로 뒤집혀서 추락하지 않았다면, 중상자가 많이 나왔어도 상당수가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승용차 사망자는 3명인데 구조대가 빨리 왔거나 한강으로 추락하지 않았더라면 이들은 살 수가 있었다.

마침 사고 발생 시각이 아침 출근 및 등교시간이라 등교하던 학생들을 비롯해 출근하던 직장인과 교사 등 평범한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그 버스를 타고 아침에 등교하던 무학여자중학교(現 무학중학교) 학생 1명과 무학여자고등학교 학생 8명이 이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 중이었다. 이 참사로 여학생 9명이 한꺼번에 세상을 떠나 무학여중고는 한동안 초상집 분위기였다. 강남 8학군에 진학 예정인 학생들이 많아서 더 심각했다. 이로 인해 무학중학교와 무학여자고등학교는 2019년 현재까지도 추모일을 지정하여 학생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현재 무학 중, 고등학교 졸업생의 증언에 의하면, 추모기간은 있지만 행사 등은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서울교육대학교 재학생이던 이승영(당시 20세) 씨는 교생 실습을 가느라 역시 16번 시내버스에 탑승했다가 그 사고로 인해 생을 마감했다. 사후 장기기증을 원했던 고인의 뜻을 가족들이 지켜주려고 했으나 장기기증 시한인 사망 후 6시간을 넘기고서야 시신이 수습되었다. 결국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 시신을 해부 실습용으로 기증하는 것으로 대신해서 고인의 뜻을 기렸다. 고인의 모친은 보상금으로 교회를 통해 장학회를 운영하여 어려운 형편의 신학도들의 장학금 지급 및 강원도 전방 부대에 이동도서관 차량 기증 등의 선행을 베풀기도 했다.

 

사고 당일 이영덕 국무총리가 김영삼 대통령에게 사직서를 제출하였으나,  1994년 10월 24일에 공식적으로 반려되었던 적이 있었다.. 오후 7시에 참사의 책임을 물어 이원종 서울특별시장이 문책성 경질되었다. 참으로 얄궂게도 이원종이 서울시장으로 발탁됨은 그가 충청북도지사 시절인 전년도 1월에 발생한 우암 상가아파트 붕괴사고를 잘 수습한 솜씨가 높이 평가받은 덕이었다고 한다.# 단, 그 사고 당시의 책임자였기 때문에 내무부에서 경고를 받기는 했다.#

경질된 이원종 시장을 대신해서 당시 경상북도지사였던 우명규 지사가 서울특별시 시장으로 긴급임명되었다. 그러나 우명규 신임 시장이 성수대교 건설 당시 서울시 책임자(서울특별시 건설본부장)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11일 만에 자진사퇴했다. 사고 당시 시기가 지방자치제 부활 이전이어서 지역민들의 선거로 뽑는 민선체제가 아닌 정부에서 임명하는 관선체제로 지방정부의 장이 선발되었기 때문에 이처럼 발빠른 인사이동을 할 수 있었다. 결국 다음달 3일 여당 전국구 의원 최병렬이 새로 부임했다. 최병렬은 서울의 마지막 관선시장이었다. 성수대교 붕괴참사를 계기로 부실시공을 막겠다는 의지표명으로 나름대로 의지를 가지고 일했지만, 임기 종료 하루를 앞둔 1995년 6월 29일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민선으로 당선된 조순 신임 시장의 취임이 7월 1일이었기 때문에 경질이야 되진 않았지만, 최병렬 역시 서울시장으로서 대형참사의 책임을 안고 불명예스럽게 이임하였다.

통행량이 많은 서울지역에 주요 한강 교량이 끊겨서 교통체증도 심각해지리라 예상들 했다. 서울시에서는 군당국과 협의하여 군사작전용 부교 설치까지도 검토했다. 그러나 부교가 일반차량 통행용이 아닌 군사작전용이기 때문에 훈련된 병력이 아니면 교량 통행에서 안전문제도 있었고, 결정적으로 부교가 왕복 4차선인 성수대교의 절반 규격이었기 때문에 설치효과도 미비할 터였으며, 군사작전이나 보안상 문제가 될 소지도 있기에 결국 철회되었다. 다행히도 시민들이 우회도로를 사용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했기 때문에 통행량이 잘 분산되어 생각보다 큰 체증이나 문제점은 발생하지 않았다.

사고 직후 서울특별시는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정리 및 수습이 완료되는 대로 3개월 안에 성수대교의 붕괴부분을 재시공하고 완벽히 보수하여 재개통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가 시민들에게 거센 항의를 받은 후 철회하였다.

동아건설은 사고 직후 성수대교 시공 후 5년 간 하자보수를 성실히 해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고 발뺌했지만, 여론의 뭇매를 맞고 결국 사과광고를 일간지에 게재했다. 수습이 마무리되면 1500억 원을 들여 전면 재건설하고, 한강교량의 전면 보수 및 관리를 위해 100억 원을 서울시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미 악화될 대로 악화된 여론에 다시 한 번 뭇매를 맞았다.

결국 시민들의 정서를 감안해 새로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1995년 4월 26일부터 국내 최고의 시공 능력과 실적을 가진 현대건설이 새로 건설하기 시작해 1997년 7월 3일에 완성되어 차량통행이 재개되었다. 해외 감리업체인 High Point Rendel 社가 국내 최초로 해외 감리업체 자격으로 시공 감리에 참여하여, 국내 감리회사와 공동으로 시공감리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당시 부실시공이 국내 감리사와 시공사의 담합이나 뇌물수수 등 비리에서도 비롯되었기 때문이었다. 가양대교 시공 때에는 아예 해외 감리업체가 단독으로 감리업무를 담당했을 정도로 정부가 국내 감리업체를 심각하게 불신했다. 국내 감리업계가 얼마나 부패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사고 발생 7년 후, 대법원은 본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 동아건설의 부실시공 때문이라고 확정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동아그룹 자체도 2001년을 끝으로 완전히 해체되면서 동아건설도 프라임개발을 거쳐 현재 SM그룹 계열이 되었다.

1999년에 피해자 한 명의 유가족이 성수대교 북단의 위령비 근처에서 목숨을 스스로 끊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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